나의 이야기

수원화성 / 화성행궁 둘러보기 (2013.9.20)

牛浦 차병찬 2013. 9. 21. 14:03

 





수원화성水原華城 (사적 3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둘러보기
 
수원시 장안구 화서공원의 화서문(華西門) ~ 서북각루(西北角樓) ·치성(稚城)
~ 서포루(西砲樓) ~ 서장대(西將臺).서노대(西弩臺) ~ 화성행궁華城行宮 (사적 478호)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화포를 쏠 수 있도록 치성(稚城:성벽의 튀어나오게 만든 돌출부) 위에 누각을 설치하고 포구(砲口)를 만들었다.















서노대(사진 앞쪽,좌)와 서장대(사진 뒷쪽,우)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벽돌로 쌓았다.





화성장대 현판, 정조의 친필


















화 성 행 궁 (華 城 行 宮)
 
사적 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부터 1796년(정조18년~20년)에 걸쳐
진행된 화성축성 기간에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원)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는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와서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화성행궁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정조(사진, 아래)의 모후 혜경궁홍씨(사진, 위) 회갑연 재연도





















수령 600년의 소원비는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