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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房 일기 / 혜민 스님

牛浦 차병찬 2013. 10. 11. 11:24

 

 

 

[마음 산책] 선방 일기

 

                                                                                                     [일러스트=강일구]

 

 


 

혜 민 스님

 

 

새벽 3시, 도심의 사람들이 아직 잠에 빠져 있을 시간 봉암사 가을 안거에 참여해 정진 중인 선방 스님들은 새벽을 가르는 목탁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원래 마음공부라는 것이 깨어 있을 때와 잘 때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항상 순일하게 하나의 시간처럼 진행돼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세수 후에 마시는 찬 새벽 공기는 다시금 마음을 깨운다. 그리고 곧 죽비소리와 함께 삼배를 올리며 새벽 예불을 마친 선방 비구들은 고요히 앉아 생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깊은 참선에 들어간다.

 우리는 바쁜 삶 속에서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내가 왜 이 세상에 나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진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홀로 오고 홀로 떠나간다. 삶이 얼마나 화려했든 풍요로웠든 죽을 때는 내 것이라 여겼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 그 마지막 길을 걸어간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 길을 동반해줄 수가 없다. 삶과 죽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얻고자, 책이나 다른 사람 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체득하고 깨닫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방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다.

 아직 별이 초롱초롱한 새벽 5시, 아침 공양 준비가 한창이다. 선방에서의 식사는 바루 공양을 하는데 내가 먹을 만큼 덜어서 한 톨의 낭비도 없이 깨끗하고 여법하게 공양을 한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면 중이 밥값을 못하는 것이라고, 신도들이 가지고 온 공양물 받는 것을 내 몸으로 신도가 쏜 화살을 받는 것처럼 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이 음식을 받을 만한지, 수행 중 작은 견처(見處)라도 생겨야 밥값을 하는 것인데 내가 그 밥값을 하긴 한 건지, 이런 생각에 수행에 더 몰두하게 된다.

 일반 관광객 출입이 금지된 봉암사의 하루는 이렇게 규칙적으로 흘러간다. 공양을 마친 대중 스님들은 모두 싸리 빗자루를 들고 도량 안을 깨끗이 세수시킨다. 그때쯤이면 동이 트기 시작하는데 새벽안개 사이로 햇빛이 쏟아들며 황금빛으로 물든 도량 안은 자못 신비롭기까지 하다. 처음 안거에 들어와 매일 도량을 쓸 때는 관광객이 들지 않아 깨끗한 사찰 안을 굳이 매일 청소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싸리 빗자루를 들고 갈지자로 쓰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역시 수행의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빗자루로 쓰는 것은 땅에 떨어져 있는 휴지가 아니라 빗자루질을 하며 만들어낸 내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상(相)을 지워야 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큰 수행이었다.

 선방 안의 수행자들은 묵언수행을 하거나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일종식을 하는 등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조용히 실천했다. 선방에서는 여러 명이 함께 있어도 마치 혼자 사는 것 같이 서로서로를 배려해가며 생활을 한다. 이번 가을 안거에 참여한 수행자들은 총 100여 명에 이르렀다. 마음이 화두에 온전히 집중되어 잘 익어가는 수행자일수록 다른 사람들 일에 간섭하거나 시비를 하는 법이 없다. 그냥 묵묵히 자신의 수행에 집중할 뿐이다. 이들은 옆에 있어도 마치 모양이 없는 바람과도 같다. 반대로 참선 시간 중에 다른 스님들은 잘 정진하고 있는지 두리번거리면서 보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이것은 본인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음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적게 드러나며, 가장 적게 관찰되는 이가 곧 가장 훌륭한 수도자다”라는 토머스 머튼 수사님의 말씀이 정말 정확했다.

 아침 참선 공부와 낮 예불, 점심 공양까지 마치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기는데 이때 많은 스님들이 봉암사 주변을 포행한다. 장시간 좌선을 하다 보면 다리를 꼭 풀어줘야 하는데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간혹 짝을 지어 걸을 때도 있는데 그때 한 스님이 이런 말씀을 건넸다. “스님, 난 깨끗한 물, 공기 마시며 수행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예.”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 가장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스님들은 본인의 전 재산과 살림이 사과 상자 두세 개에 다 들어갈 정도로 단출한 삶을 살고 계셨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욕심 없는 마음들은 머리로 알기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느덧 저녁 참선 시간. 참선 중 물을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와 보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별이 가득하다. 별을 올려다보면서 내 안의 근본 문제인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 어떤 것이 참나던고?” 하는 한 가지 화두 의심에 마음이 몰두한다.

 
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