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 개헌 논이지금 해야할 때인가? (조해진 / 윤상현)
논쟁의 초점
최근 국회에서 개헌론이 등장했고, 많은 국회의원이 동조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키면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난 후 개헌론은 유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도 개헌에 동조하는 등 개헌론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왜 개헌을 주장하는지, 왜 지금은 개헌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양쪽 의견을 국회의원들로부터 들어봤다.
< 찬 성 > 제왕적 대통령제 재고해야

조해진 국회의원·새누리당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 국회의원 총사퇴, 국회 해산론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정치, 이런 국회는 당사자인 국회의원 스스로도 ‘이걸 계속 해야 하나’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정치가 제 기능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 최고의 과제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필수 요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치가 왜 이렇게 됐고, 어떻게 해야 바로잡힐 것인가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다. 우리 헌법의 대통령제는 미국식 대통령제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헌법이 규정하지 않은, 관행과 문화에 의한 비공식적 권력까지 대통령에게 주어지면서 ‘제왕적’ 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사실 왕조시대 군주들도 지금 우리 대통령들처럼 막대한 권력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막강 권력을 운용할 수 있는 영웅적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그런 지배적 권력, 권위적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권력을 혼자 움켜쥐고 있으면서 갈등과 비효율을 양산하게 만든다. 권부에는 힘이 차고 넘치는데 시중은 힘의 기갈에 시달리는 현상이다. ‘권력의 사내유보(社內留保)’가 낳는 폐해다. 우리 정치체제는 이긴 쪽이 권력을 독식해 배타적으로 통치하기 때문에 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운다. 선거가 없는 평시에도 모든 걸 선거의 전초전으로 여겨 기선을 제압하고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5년 내내 공방을 이어간다. 사안마다 부딪히고 싸움으로 날을 보낸다.
제왕적 권력이 민주적으로 분화되지 않는 한 정치권은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정치 과정은 거기에 볼모 잡혀 파행을 면치 못하게 돼 있다. 국정 운영, 국가 경영도 거기에 발목 잡혀 표류하게 돼 있다. 이런 근본 문제를 그냥 두고 정치의 변화를 외치는 건 백년하청, 연목구어다. 그런 점에서 개헌을 통해 권력의 민주적 분화를 구현하는 것은 최고의 정치개혁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당선되면 개헌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이런 절실한 시대적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만 하면 예외 없이 약속을 사문화해 버린 것은 단임제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백년대계보다 당대의 통치권 유지에 더 골몰했기 때문이다. 정권마다 임기 초에는 ‘국정과제 우선’, 중반에는 ‘가시적 성과가 급해서’, 후반에는 ‘대선이 다가와서’라며 똑같은 패턴의 식언을 반복해 온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낡은 정치의 고질을 혁파하고, 선진 민주복지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가의 틀을 짜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개헌에 임했어야 한다. 경제가 중요하고 민생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지 않을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경제와 민생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한순간도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것 때문에 개헌을 못 한다면 개헌은 영원히 못 하는 것이다. 개헌에 착수하면 경제 살리기가 방해를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섣부른 결론이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개헌은 경제나 민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아니라 무익한 정쟁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정치권이 개헌에 몰입하는 동안 정부는 국정 운영에 발목 잡히지 않고 국책과제에 속도를 낼 수도 있다. 고무적인 것은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개헌의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90% 이상이 개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에는 여야도, 지역도, 정파도 없다. 국회 개헌추진모임에 정식으로 가입한 의원이 개헌 발의선을 넘어섰다. 잠재적 지지자까지 합하면 압도적이다. 여야 지도부와 국회 수뇌부까지 개헌에 적극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 일정에 대한 대안 없이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시대적 대의를 거스르는 움직임은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조해진 국회의원·새누리당
< 반 대 > 개헌 논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윤상현 국회의원·새누리당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어렵게 살려낸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할 절박한 시기다. 우리 경제는 지금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내수 침체가 계속되면서 위기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 기업들은 실적이 악화되고 있고 내수 기업들은 실적을 쌓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경제 침체와 노사관계 불안, 실업률과 가계부채 증가도 복병이다. 세계 경제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불확실성을 더해 준다.
정부가 정책자금을 대거 투입하는 등 경제 활성화와 경기 부양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기대만큼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운 경제 상황을 제쳐두고 개헌 논의로 또다시 정치적 갈등에 불을 지피려는 것 자체가 ‘정치 부재’를 자인하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아닌가.
국민 여론의 동의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권 일부가 권력구조 변경에 대해 높은 관심과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국민의 의사와 일치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지금 우리 국민이 과연 얼마나 분권형 개헌 같은 국가 권력구조 변경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을까.
권력 나누기 정치논쟁은 접어두고 제발 민생부터 챙기라는 것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절박한 요구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토록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더니 이제는 국민 여론이 정치권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기회가 없는 내년이 개헌의 적기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다른 주장이다. 국민의 뜻은 경제 살리기에 있는데 정치권 일각의 관심이 개헌에 있으니 이것부터 논의하자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과연 무엇이 먼저 해야 할 일인지 재고해야 한다.
이제 겨우 박근혜 정부 2년차다. 정부가 한창 일할 시기인 것이다. 이런 때에 온 나라에 개헌 논쟁이 붙으면 나랏일은 언제 하나. 개헌 논쟁이 시작되면 모든 국정 이슈가 무력화되고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될 것이다. 나라정책 추진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그 뻔한 결과를 보고도 그 일을 벌이자는 게 올바른 주장인가.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때는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 우리가 지금 경제를 회생시키지 못하면 언제 다시 그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그로 인한 고통은 우리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렵게 찾아온 기회다. 절대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에는 경제 회생뿐 아니라 국민 안전 강화와 국가 대혁신의 중차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정부조직 개편과 공공기관 개혁 등 시급한 정책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이 모두가 결국 국회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 그간 국회는 어떠했나.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장기 공전과 파행으로 귀중한 시간을 버려 왔다. 경제회생 대책이 담긴 법안들을 빨리 의결해 정부의 정책 추진을 도와주기는커녕 법안 심사조차 안 했고,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국회가 일반 법률도 아닌 헌법을 고치겠다고 나서니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국회가 지금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일은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민생안정 대책이다. 민생 안정 없이는 권력구조 개편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민생 법안이 상임위원회 문 밖에서 하염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무엇을 해보려 해도 국회가 이 지경이니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대통령을 탓하고 정부를 탓하기 이전에 정치권 스스로 내 탓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권력구조를 탓하고 개헌 논의를 하자고 하기 이전에 국회 스스로 해야 할 국정 현안부터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지금은 개헌 논의에 억지로 군불을 지필 때가 아니라 경제 회복의 불씨를 키워야 할 때다.
윤상현 국회의원·새누리당
2014. 10. 15 중앙일보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