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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장가(悼二將歌) / 신숭겸, 김락 장군 이야기자유게시판 2019. 7. 5. 16:57
도이장가(悼二將歌) / 신숭겸, 김락 장군 이야기
왕건은 백제군이 물러가고 죽은 장수들과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고 신숭겸(申崇謙)
장군의 목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애통해 하면서 신숭겸의 시신을 거둔 곳에 순절단(殉節壇)과
지묘사(智妙寺)를 세우고 신숭겸의 명복을 빌고 토지를 하사하고 사람을 두고 관리하게 하였다.
신숭겸의 목 없는 시신을 수습해서 개성으로 가던 왕건은 광해주(춘천)에서 순금으로 두상(頭像)
을 만들어서 시신과 함께 장사지냈다.
후 일 고려 16대 왕 예종은 왕위에 오르고 팔관회에 참석했는데 갑옷을 입힌 허수아비가 말을
타고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신하가 대답하기를 옛날에 신숭겸 장군과 김락(金樂) 장군이 태조가 백제의 견훤과 공산에서
싸우다가 죽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때 죽은 두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팔관회를 열어서
두 장군을 추모했는데 그 자리에 신숭겸과 김락의 형상을 한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갑옷을 입혀서
함께 있는 것처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예종은 그 자리에서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었다.
이두식(吏讀式) 표기로 된 향가(鄕歌) 형식의 노래로, 8구체(句體)를 4구씩 2분하여 지었다.
1120년(예종15) 왕이 서경(西京:平壤)에 행차하여 팔관회(八關會)가 열렸을 때, 그 자리에
개국공신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의 가상(假像)을 만들어 참석하게 한 것을 보고, 왕이
그들의 공을 추도하여 지은 노래이다.
《평산신씨 고려대사장절공유사(平山申氏高麗大師壯節公遺事)》에 전하는 가사를 보면
“① 主乙完乎白乎 心聞際天乙及昆 魂是去賜矣中 三烏賜敎職麻又欲 ② 望彌阿里刺 及彼可
二功臣良 久乃直隱 跡烏隱現乎賜丁”인데, 이것을 양주동(梁柱東)은 “① 니믈 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1/오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2/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3/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4/도
이장가 본문 이미지 5/밋곤/넉시 가샤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6/사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7
샨 벼슬마 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8 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9져 ② 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10라며 아리라/그대 두 공신이여/오라나 고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11/자최도이장가 본문
이미지 12 나토샨뎌”로 해독(解讀)하고, 이것을 의역(意譯)하여 “님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한, 그 정성은 하늘 끝까지 미치심이여, 그대의 넋은 이미 가셨지만, 일찍이 지니셨던
벼슬은 여전히 하고 싶으심이여, 오오! 돌아보건대 두 공신의 곧고 곧은 업적은 오래오래
빛 나리로소이다”로 풀이하였다. 이 노래는 《정과정곡(鄭瓜亭曲)》과 함께 향가 형식의
노래가 고려 중기까지 남아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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