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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 - 조지훈 / 흥선대원군 / 능원군 이보 묘소나의 이야기 2020. 3. 15. 21:20
◈ 조지훈(趙芝薰) 묘소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으로 시작하는 시 「승무」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1920~1968)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사람이다. 지훈(芝薰)은 호이며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등단해 한국의 고전적인 미와 불교적 세계를 노래하였으며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시인의 이름으로 돋보이지만
그것은 청년기의 일이고 중년에 학자로서 활동한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에서 낸『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였고 1947년부터는 고려대학교
교수로서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하여 간행하는 등 학문적 활동도 활발하였다.
시집으로는 『역사 앞에서』 등 여러 권이 있고, 『지조론』, 『한국문화사 서설』 등의
저술도 남겼다.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묘소 ◈
조선(朝鮮) 시대(時代) 26대 고종(高宗) 때의 정치가(政治家). 고종(高宗)의
생부(生父). 성(姓)은 이(李). 이름은 하응(昰應). 호는 석파(石坡). 고종(高宗)이
12세에 임금 자리에 오르자 섭정(攝政)이 되어 국가(國家)의 실권(實權)을
장악(掌握)하여, 외척(外戚)인 안동 김씨(安東金氏) 세력(勢力)을 누르고,
사색(四色)을 고르게 인재(人材)를 등용(登用ㆍ登庸)함. 서원 철폐(書院撤廢)ㆍ
법전(法典) 편찬(編纂)ㆍ경복궁(景福宮)의 중건(重建) 등(等) 과감(果敢)한
시책(施策)을 단행(斷行)하고, 한편 천주교(天主敎)의 탄압(彈壓)과 쇄국양이
(鎖國攘夷)의 정책(政策)을 고집, 개화(開化)에 역행. 만년(晩年)에 민비(閔妃)와
대립(對立)하여 실세(失勢)함.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畫)에도 능(能)했음.
대원군(大院君). (1820~1898)
◈ 능원대군(綾原大君, 이보李俌) 묘소 ◈
능원대군(綾原大君, 1598년 5월 15일(음력 4월 11일) ~ 1656년 1월 26일(음력 1월
1일)은 조선 후기의 왕족, 정치인이다. 원종(정원군)과 인헌왕후 구씨의 차남으로,
인조의 친동생이다. 성은 이, 이름은 보(俌),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담은당(湛恩堂),
또는 경숙(敬叔),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임해군의 옥사 직후 익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 되었고, 광해군 시절
종실 자격으로 인목대비 폐비 논의에도 참여하였으나, 인조 반정 이후 처벌 받지 않았다.
1628년(인조 5) 9월 17일에는 소무원종공신 1등(昭武元從功臣一等)에 책록 되었다.
본 부인인 부부인 류씨의 친정 아버지인 류효립이 모역을 꾸미다가 실패하고 살해되면서,
인조는 그에게 아내와 이혼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하였고, 자신의 집에 계속
살게 하였다. 첩인 부부인 김씨에게서 자녀들을 보았다. 1601년 능원수(綾原守)에 처음
책봉 되었다가 1607년 능원군(綾原君)에 개봉되었으며, 훗날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
되면서 그도 대군으로 진봉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에 섰으며, 명나라 배신록에
실렸다. 1646년(인조 24) 9월에는 영국원종공신(寧國元從功臣)에 책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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