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부(烈婦) 노이득(盧利得) 여사를 말하다나의 이야기 2020. 11. 6. 16:59
열부(烈婦) 노이득 여사는 1940년 1월 3일(음) 창녕군 이방면 석리에서 광주노씨(光州盧氏) 문중의 부친 재봉(在鳳)씨의 3남 5녀 중 3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숙과 덕용을 겸비하였고, 가정과 남매들의 화목에 힘쓰며 자랐다. 나이 20세에 동갑인 같은 면의 초곡리 차진백의 아들 연안차씨(延安車氏) 강렬공파(剛烈公派) 38세손 일랑(一郞)과 혼인하여 슬하에 자녀 2남 2녀를 두었다.
혼인 직후 신랑이 군 복무를 하게 되었고 그동안 홀로 시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남편의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1970년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성심을 다해 봉양하였다. 자식들이 청소년이 된 시기에 학업을 위해 1977년 가족 모두가 정든 고향을 떠나 마산으로 이사하여 자녀들이 훌륭하게 장성할 수 있도록 남편과 같이 20년이 넘도록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식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1979년 모시던 시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지자 2년간을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마산, 창원과 김해에서 남편과 함께 열심히 가정 경제를 일으켜 세우면서 자녀들이 성장하여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살림을 일으켰고 이에 부응하여 그 자식들은 잘 성장하여 현대 위아, LG전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손자 손녀들은 삼성물산과 육군 대위(손녀)로 장성하였다.
나이 66세 되던 해인 2005년 10월 9일 남편이 뇌출혈로 인한 우측반신이 마비되어 수족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40여 일간 좋다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병원에서조차 어렵겠다고 포기한 남편을 집으로 모셔와 항상 곁에서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매기도 함께 보이는 남편의 병간호는 물론 세면과 면도, 대소변을 본인이 직접 맡아 돌보고 오물이 묻은 의복을 깨끗이 빨아 입히고 좋은 음식으로 공양함이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하여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 와중에 본인도 디스크로 인하여 허리 수술을 받아 당신이 타인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남편 돌봄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 문중의 자랑스러운 모범사례이기에 앞서 본인의 그 오랜 세월의 신고(辛苦)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가히 현대판 이 시대의 효부(孝婦)이며 또한 열부(烈婦)로 추앙받아 마땅할 것이다.
- 2020 車門宗報 게재 예정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주 영릉(英陵, 세종) / 녕릉(寧陵, 효종) (0) 2020.11.07 화담숲 가는 길목 (0) 2020.11.07 동대문디자인플라자 (0) 2020.11.06 덕수궁 / 서울시청 / 환구단 /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0) 2020.11.05 차지인.김우석 결혼식 (0)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