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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일상사와 관심 사항을 日記쓰듯 기록해 가는 저의 작은 개인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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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련원공원 윤관(尹瓘)장군 상(像) / 박웅진 詩碑
    나의 이야기 2020. 11. 24. 14:57

          - 비문(碑文) 해제(解題) -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장군(將軍)은 고려왕조(高麗王朝) 초기(初期)에 태어나서 문무겸전(文武兼全)의 탁월(卓越)한 자품(姿品)을 갖추고 왕건(王建) 태조(太祖)의 건국이념(建國理念)을 이어받아 고구려(高句麗)의 옛 강토(疆土)인 북녘의 실지(失地)를 회복하기에 충의불굴(忠義不屈)의 온갖 정성(精誠)과 심혈(心血)을 기울여 기어코 겨레의 숙원(宿願)을 성취(成就)시킨 위대(偉大)한 인물이라 문종조(文宗朝)에 등과(登科)하여 벼슬이 문하시중수태보(門下侍中守太保)에 이르고 예종(睿宗) 때 여진족(女眞族) 정벌(征伐)의 대작전(大作戰)을 전개(展開)하여 천리변경(千里邊境)을 소탕(掃蕩)하고 구성(九城)을 쌓아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시책(施策)을 굳힌 다음 마침내 두만강(豆滿江) 건너 육백리(六百里) 땅 선준령(先濬嶺)에 고려경계비(高麗境界碑)를 건립(建立)하고 개선(凱旋)하였으니 정녕 민족(民族)의 승리(勝利)요 영광(榮光)이었다. 하지마는 여진(女眞)이 영구(永久)히 조공(朝貢)을 바치겠다는 간계(奸計)에 의지(意志)가 약(弱)한 문신(文臣)들의 동조(同調)로 구성(九城)은 여진(女眞)에게 환부(還付)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세종(世宗) 때 와서 구성(九城) 옛터 일부(一部)에 육진(六鎭)을 다시 개척(開拓)하여 현 세기(現世紀)에 이르는 국경(國境)을 확정(確定)지었으니 장군(將軍)이 세운 ⌞척지진국(拓地鎭國)⌍의 위공(偉功)은 새삼스러이 국토통일(國土統一)의 비원(悲願)을 안고 민족중흥(民族中興)의 대업(大業)을 위(爲)하여 한 결 같이 전진(前進)하고 있는 이 민족(民族)의 영원불변(永遠不變)한 지표(指標)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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