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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시 서신면 당성(唐城) 탐방
    나의 이야기 2021. 10. 25. 06:21

       둘레 1,200m로, 당항성(黨項城)이라고도 한다. 1971년 사적 제217호로 지정되었다. 테뫼형(山頂式)과 포곡형(包谷形)을 결합한 복합식으로, 현재 동문·남문·북문의 터와 우물터, 건물지가 남아 있다. 원래 백제의 영역에 속하였던 지역는데, 한때 고구려가 점령하여 당성군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백제시대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된 후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 백제의 영향을 받아 복합형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성의 테뫼형 부분은 다시 2구(區)로 나누어진다. 현재 형태가 뚜렷한 것은 포곡형인데, 그 평면은 대략 긴 네모꼴을 이루고 있다. 북서쪽으로 면한 성벽의 길이는 약 1,030m이다. 이 성의 문터로 남문터와 북문터가 있으나, 수구(水口) 부분에 있어야 할 북동문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단지 사적 보수로 신축한 산성 진입로 통과지점을 동문터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60m 지점에 위치한 북문터의 넓이는 약 4㎡이다. 이 문터를 통과하는 부분의 성벽높이는 약 2.5m, 밑부분의 너비는 7∼8m이다. 성 안에는 《읍지(邑誌)》에 전하는 조선시대 망해루(望海樓)로 추정되고 있는 건물 터의 초석이 남아 있다.

    테뫼형 산성은 남서쪽의 제일 높은 곳을 둘러서 축조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성의 둘레는 230m이나, 포곡식 산성이 축조된 후 흡수되어 그 기능을 잃은 것으로 짐작된다. 또 하나의 테뫼형 산성은 남서쪽의 제일 높은 곳에서 밖으로 연장된 높이 140m의 언덕 위에 길이 90m, 너비 50m, 둘레 250m로 축조되어 있다. 당항성이 있는 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唐恩郡)이었다. 이곳은 신라가 황해를 통해 중국과 교통했던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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