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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貞陵) / 북서울꿈의숲나의 이야기 2022. 5. 29. 21:19
정릉(貞陵)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의 능)
신덕황후 강씨(神德皇后 康氏 ?~1396)는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고려의 이름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고려말 함경도 출신의 무관이었던 태조의 경처(京妻)로서 태조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세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덕황후는 1392년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자 조선 최초의 왕비(현비 賢妃)로 책봉되었고,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며 자신의 둘째 아들 방석(의안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왕자의 난과 뒤이은 정치적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1396년(태조 5)에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시호를 신덕황후라 하고, 능은 현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정릉을 조성하고 자신의 능자리도 그 곳에 같이 만들었다.
그러나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태조의 뜻과 달리 태조의 능을 현재의 건원릉(구리 동구릉)에 조성하였고, 이듬해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 하여 현재의 자리인 사을한(沙乙閑) 산기슭으로 옮겼다. 옛 정릉에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은 각각 태평관과 광통교를 짓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태종은 신덕황후를 태조의 왕비로 인정하지 않아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정릉은 민묘(民墓)와 다름없는 모양이었다가 1669년(현종 10)에야 신덕왕후가 왕비로 인정받아 신주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되었다. 신덕왕후는 1899년(광무 3) 황후로 추존되었다.
정릉에는 병풍석, 난간석, 무인석 등의 석물은 없으며,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친 고석(鼓石)만 옛 정릉의 석물이고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만든 것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따라 한번 꺽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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