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6월, 접시꽃 / 황매실 / 자라섬 풍경
    나의 이야기 2022. 6. 16. 20:25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불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