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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의덕사 까지나의 이야기 2020. 12. 28. 11:15
강진에서 의덕사 까지
차윤경(동탄, 강렬공파 39세손)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송산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바로 윗집이 큰집이라 아버지 또한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어린 꼬마였을 때 족보가 무엇인지, 몇 대손인지가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적에 아들 하나에 딸이 넷인 아버지께서는 족보를 펼쳐두시고 시조가 누구인지, 우리가 몇 대손인지, 어떻게 차씨 성이 되었는지를 옛날이야기처럼 자주 해주셨다. 차씨가 호랑이를 구해주었던 이야기, 차씨 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야기 등 정말 옛날 구연동화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로 차씨 성을 가지신 분을 만나게 되고 다른 성씨를 가진 분을 만나다 보면 본인들이 몇 대손이고, 시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의아함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여자인 나도 알고 있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3년 전쯤이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연안차씨의 유래에 대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부산시 기장군 만화리가 기억에 남아 있었고 부산에 가게 되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모처럼 쉬는 날 여동생과 함께 부산 여행을 가게 되어 첫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우리는 동래복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탔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경상도 부산 택시 기사님은 기장군의 차릉을 처음 들어 본다며 잘 모른다고 하였다. 내비게이션 안내로 차릉에 도착한 택시 기사님은 이런 곳에 차릉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보다 더 신기해하셨다. 돌아가는 차편이 없을 것이라고 기사님도 쉬면서 구경하시겠다며 기다려 주셨다. 미리 준비해간 청주와 포를 올리고 절을 하는 우리를 보며 기사님은 “내가 이씨 성인데 차씨 성은 아니지만, 술 한 잔 올리고 싶다.”라며 술 한 잔 올리고 절을 하셨다. 그때의 인연으로 기사님은 손님들에게 차릉 홍보대사가 되셨다고 한다. 지금도 기장군 차릉문화재를 할 때면 차릉문화재 한다며 부산에 안 내려오느냐면서 안부 연락이 오곤 한다. 너무나도 감사한 인연이다.
그 후 나는 서울에서 동탄 신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예전에 화성에 사건 사고가 많이 나던 곳이라서 남편에게 이사 가기 싫다고 꺼려했던 나는, 같은 아파트에서 슈퍼를 운영하시는 차씨 일가 분 아저씨를 알게 되고 아저씨를 통해 주변 정남면에 차씨 집성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남면을 [선현의 발자취] 동영상에서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신기했다. 그곳이 가까운 곳에 있기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운혁 중시조의 정려문비와 정남면에 있는 낯선 여러 산소를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동네 일가분과 대화를 하면서 선대 분들이 모셔져 있는, 시제를 모시는 곳이 따로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보자고 하였다. 연안차씨 강렬공파의 선대 분들이 모셔져 있는 많은 묘와 비를 보면서 나의 눈은 둥그레졌고 선대 분들의 그 위엄이 느껴졌다. 한 분 한 분 모두 인사드리지 못했지만 이렇게 찾아뵙고 인사드릴 수 있어서 의미 있었고 기뻤다.
나에게 3년이란 시간 동안 ‘우연’은 여러 번 찾아왔다. 일부러 연안차씨의 발자취를 찾아본 건 아니다. 허허벌판 동탄 신도시 주변에 가볼 곳을 찾다 보니 집에서 30분 이내 거리인 평택의 문화유산인 의덕사 관련 블로그를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현의 발자취] 연안차씨 편 동영상에도 나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인지, 아니 필연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처음엔 블로그에서 어떤 내용인지 보다도 홍살문과 연안차씨 사우 입구 비석이 눈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자동차 없이 이동하기 어려워 남편에게 함께 가보자고 하였다. 의덕사에 도착한 나는 굳게 닫힌 태극 문양의 삼문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다 남편이 귀한 나무라고 말해서 처음 본 백송을 신기하게 살펴보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제를 지내는 날인 음력 9월 1일이 다가오자 나는 남편에게 또다시 의덕사를 다녀오고 싶다고 하였다. 의덕사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차씨 종친회에서 지내는 시제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었다. 다행히 주말이라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은 쉬지도 못하고 운전해 가면서 광산김씨 종손이 연안차씨 시제까지 가야 하냐며 볼멘소리로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시제가 시작될 즈음 의덕사에 도착하였고 차에서 혼자 들어갔다 오라던 남편은 어느새 의덕사 경내에 들어와 종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코로나로 인해 전국의 많은 종친 어르신 분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온 낯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그냥 가겠다는 우리에게 극구 점심을 먹고 가야 한다며 제사 음식까지 싸주신 어르신들께 너무 감사했다. 따뜻한 갈비탕 한 그릇과 제사 음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따뜻함과 온정을 느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르신들이 모두 친절하시고 좋으신 분들이라며 연안차씨 대단한 문중이네!”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지?”라고 할 정도로 어깨의 깃이 으쓱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의덕사 근처에 살고 계시는 큰 어르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았다. 의덕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셨지만 넓게 많이 배우라고 조언도 해주셨고, 종친회에 건의할 사항과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는 큰 어르신의 말씀에 오히려 나는 한참 어린 손주 뻘 되는 젊은 사람의 의견까지도 경청해 주시려는 어르신의 넓은 아량과 혜안에 존경심이 들었다.
요즘처럼 뿌리가 무엇인지 종친이 무엇인지 제사까지도 사라져가는 시대에 의덕사를 다녀오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예전 같으면 여자가 시제에 참석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지지만 그만큼 시대가 변하였고, 여자이기에 여성으로써 아이를 잉태하고 자녀를 훈육하는데 좋은 경험과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의덕사의 천연기념물 백송처럼 대대손손 선대들의 혼과 얼이 이어져 뿌리 깊은 연안차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0. 12. 27.
사진 뒷줄 맨 좌측 필자 차윤경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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