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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은 위험으로 보라 - 김희경
    자유게시판 2022. 8. 26. 10:34

     

     

    신선한 공기 가득한 새벽을 막 넘어온 아침은 새들의 합창소리로 시작한다. 앞서거니 뒷 서거니 새가 난다. 포르릉 포르릉 낮게 날다, 높게 날아오르며 천상과 지상의 세계를 가지고 노는 재주가 있다. 새들은 바쁘다.

     

    어둠을 막 건너온 아침은 상큼하고 신선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산행이 어색하지 않다. 출판을 시작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의 개성에서 배울 점이 많다. 공부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 알아간다는 것은 싱그럽다. 아침 산행에서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 목표를 향해 가는 걸음걸이가 힘차다.

     

    오늘 산행지는 강원도 홍천이다.

     

    공작산 약수봉과 생태 숲 산소길 중 A코스는 공작산 약수봉과 계곡, B코스는 수타사 생태 숲과 계곡이다. 편하게 자신의 체력에 맞춰 걸으면 된다. 공작산 수타사 생태 숲을 향해 단체사진과 인증 샷도 찍었다. 파란하늘에 둥실 떠있는 구름. 몽실몽실 하얗고 눈이 부시다. 비가 많이 온 후여서 시작되는 계곡엔 물줄기가 힘차게 흐른다.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숲길이 나 있고 주변엔 무성한 나무와 바위 틈으로 보이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못해 통쾌하다. 이렇게 시원했던 날이 있었을까. 이미 나의 일상에 박혀있던 몸 안의 찌꺼기들이 초록초록한 녹음에 정화되고, 우울함은 산산 조각이 나 마음 안이 쾌청하다. 시원하다. 상쾌하다. 통쾌하다. 자연이 주는 바람과 하늘과 물. 오늘 난 그저 감사한다.

     

    방울토마토를 걸으며 먹고 있었다. 달달하니 설탕에 담갔나 싶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입 안의 세상이 달아 바깥세상이 어찌되든 부러울 것이 없는 달콤함이었다. 앞서 가는 대여섯 사람과 뒤에 보이는 회원 서너 명이 걷고 있었다. 대충 우리는 5미터 간격을 두고 걸어가고 있었다.

     

    흰 모자에 노란 티셔츠, 파란바지. 고대 경영산악회란 마크가 눈에 띄는 검정색 조끼를 입고 계신 삼보물류 이진현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봤다.

     

    20분 정도 올라가고 있었다. 잠시 물류 회장님과는 떨어져 뒷 팀들과 잠깐 합류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앞서가던 팀이 멈추어 섰다. 재미있는 일로 멈추었나 싶었다. 일상적인 작은 사건 하나가 생겨 대화를 나누나 생각했다. 사람들의 관심 대상을 발견했다. 뱀이었다. 뱀은 크지 않았다. 순간 보았다. 뱀에 물린 회장님의 손가락! 손가락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분위기는 심각하다 못해 공포였다. 회장님께선 농담처럼 말했다.

     

    "뱀에 예전에도 물려 봤어요. 죽지 않았어요."

     

    자기 위안으로 괜찮을 거라며 산행을 계속한다고 했다. 배려가 강한 분이라 남에게 민폐를 안 주시는 분이었다.

     

    "나보다 작은 녀석이 물었는데 올라가시지요."

     

    회원들을 안심시켰다. 나는 상황이 안전한 게 아니란 걸 직감했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뱀에 물렸을 때 정확한 상식은 없었지만 독을 빼내야 한다는 것과 심장 가까운 방향으로 약간 떨어지게 묶어야 한다는 기초 상식이 떠올랐다.

     

    안전하니 괜찮다는 말을 무시하고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처치를 했다. 그리고 119에 신고를 했다. 산이라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제일 먼저 구급대원이 물었다.

     

    물린 자리의 구멍이 "두 군데입니까?"

    "예. 두 군데입니다."

    독사가 물 경우 물린 자국이 두 개였다.

     

    회장님은 입으로 독을 빼내는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분들의 도움으로 손수건으로 팔을 세게 묶었다. 모두 하나가 되어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급한 상황에서는 가족보다 더 끈끈함을 느꼈다. 산행에서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모두 고마웠다. 뱀이 점프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리도 없는 뱀은 공격을 받는 순간 자기방어로 뛰어올라 공격을 가했다. 회장님도 뱀의 공격으로 물렸다. 회장님의 상황은 보다 심각했다. 입으로 계속 독을 빨아내도 피는 계속 흘렀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뱀에게 물린 상황을 처음 목격했다.

     

    큰 일임을 인지해 나는 구급대원과의 통화를 계속 했다. 구급대원에게 전화하지 말라는 만류도 무시하고 계속 전화를 했다. 내가 보기엔 심각한 상황이었다. 고쳐야 할 상식이 있다. 뱀에 물렸을 때 입으로 독을 빨아내지 말아야 한다. 자칫 독이 입에 들어가 목숨까지 위험하다. 또한 독이 퍼진다고 손수건으로 꽉 묶으면 피가 안 통해 물린 자리가 마비가 올 수 있다. 묶을 때는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틈을 남기고 심장하고 5~10센티 가까운 곳을 묶어야 하며 심장보다 물린 위치가 낮게 해야 한다. 움직이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독이 온몸에 퍼질 수 있으니 안정해야 한다는 조치방법을 알았다.

     

    구급대원과의 대화는 떨리는 가슴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참 따뜻한 목소리였다. 구급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어떠세요?" "아프고 멍해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걸을 수 있으면 걸어 내려오라고 했다. 차가 올라올 수 없는 좁은 산길이었다.

     

    같이 걸어 내려가는 회원과 회장님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보였다. 하지만 회장님은 아무 일 없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회원들 걱정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장님의 얼굴은 이미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우리를 염려하셨다. 우리가 올라갔던 길은 이십여 분인데 내려가는 길은 왜 이렇게 먼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처럼 멀게 느껴졌다.

     

    한 걸음이 열 걸음 같았다. 다시 상태를 물었다. "어떠세요?" "예전에 뱀에 물렸을 땐 안 아팠는데 지금은 점점 아파 와요." 올라올 때 푸른 나뭇잎 색깔이 안 보였다. 나무도 숲도 계곡의 물소리도 안 보이고 안 들렸다. 그저 무사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빴다.

     

    드디어 구급차를 만났다. 구급차와의 만남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구급차 안에서의 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회장님의 혈압이 첫 번째는 210/110, 두 번째 혈압은 220/120이었다. 세 번째 혈압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 에러(error)로 떴다. 혈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독사에게 물렸을 때 회장님은 산행을 고집했다. 나는 극구 말렸고 119로 전화를 했다. 회장님은 전화기까지 빼앗으며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고집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잘한 고집이었다.

     

    구급차 담당자가 말했다. "물린 독이 혈전이 되면 혈압 과다로 사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회장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수없이 괜찮아질 거야를 되뇌었다. 숨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하얗게 변한 사무처장님의 손은 회장님의 손을 세게 잡고 있었다. 얼굴색이 가지 빛깔이었다. 검게 변해갔다.

     

    홍천 아산병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처치를 받았다. 처치 후에도 회장님의 손이 붓기 시작했다. 회장님은 여전히 농담을 했다. "먼저 죽으면 산에 묻어 달라." 우리의 걱정을 뒤로 하라는 말씀이지만 농담이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제는 가서 식사하고 오라며 우리를 떠밀었다. 손은 산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파랗던 얼굴은 하얗게 자신의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교훈 하나를 얻었다. '위험을 위험으로 보라. 위험을 가볍게 보지 말라.'

     

     

    * 필자 / 김희경

    작가. 출판사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대표. 88b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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